김영후(金永煦)
이듬해에는 심왕(瀋王) 왕고(王暠)의 모반에 참가하지 않고, 원나라에서 충혜왕을 시종한 공으로 추성보절동덕익찬공신(推誠保節同德翊贊功臣)의 호를 받았다. 1343년 11월 원나라의 자정원사(資政院使) 고용보(高龍普) 등이 충혜왕을 잡아갈 때, 시종한 백관들이 모두 도망갔으나 끝까지 남아 있다가 창에 맞기도 하였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 10월 찬성사가 되었다. 1345년 정월 정방이 부활하였을 때, 찬성사로서 제조관(提調官)이 되었다. 12월 좌정승으로 원나라에 방물(方物)을 바쳤으며, 우정승에 승진되었다. 1346년 5월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352년(공민왕 1) 8월 복창부원군(福昌府院君)에 봉해지고, 서연(書筵)에 입시해 변정도감(辨整都監: 전민변정도감)을 파할 것을 주장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병을 칭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