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무경 자수(無竟子秀, 1664~1737)이다. 전주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홍(洪) 씨이다. 12세에 종남산 송광사에서 출가하고 16세에 징파(澄波)에게 수계하였다. 추줄산 운문사에 주석하고 있던 추계 유문(秋溪有文)의 문하에서 공부한지 10여 년만에 인가를 받고 전법 제자가 되었다. 추줄산 쌍계암에서 세수 74세로 입적하였다.
무경 자수의 행장에 따르면, 1734년(영조 10)에 사자산 적조암(寂照庵)의 보경실(寶鏡室)에서 『불조선격(佛祖禪格)』, 『자기삼궁보경삼매(自己三宮寶鏡三昧)』, 『이학류편(理學類編)』, 『하락주설(河洛註說)』을 저술하였다고 하였으나, 이 글들은 사후에 제자들이 간행한 시문집인 『무경집』 3권과 법어집인 『무경실중어록』 2권에 포함되지 않았다. 근대에 『불조선격』을 초록(抄錄)한 필사본 『불조진심선격초』가 발견되어 『한국불교전서』 제9책에 수록되었다.
1권 1책. 필사본. 책 크기는 25.8×16.3cm이다.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불조진심선격초』는 총 19편의 문장과 5편의 논설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문장 제1 '심왕의 오묘한 모습(心王妙相)'에서는, 천지 우주에서 홀로 존귀하여 그 기운이 천지를 뒤덮고 그 신령함이 법계에 가득한 심왕(心王)을 금륜성왕(金輪聖王)의 아들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문장 제2 '지위에 거처하여 도에 이름(居位至道)'에서는, 바른 지위에 거처하는 본체의 진면목(眞面目)은 생각으로 이를 수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으므로, 공(空)과 유(有)를 모두 버리면 이 세상이 모두 공왕전(空王殿)이라고 하였다.
문장 제3 '지위도 없고 이름도 없음(無位無名)'에서는, 공왕전에서는 일체의 분별이 끊어져서 일체의 지위도 없고 이름도 없어서 세존께서 ‘이와 같이 오묘한 법(如是妙法)’이라고 말씀 하신 것이니, 이것을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소식이라고 하였다.
문장 제4 '없음 가운데서 지위를 이룸(無中成位)'에서는, 지위 없는 참사람(無位眞人)은 허허로운 지위에서도 형상 없는 오묘한 덕(德)을 성취하여 형체가 없는 본체로 시방의 허공을 덮어 진정한 본체를 이룬다고 하였다.
문장 제5 '관문을 열고 다스림을 물음(開關問政)'에서는, 본래의 일심에 도달한 참사람이 갖가지 방편을 통해 제자들을 이끌어 가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문장 제6 '도장을 이용하여 이치에 이름(用印至理)'에서는, 이치는 본래 고요하고 텅 비어 있으며 차별이 없으므로 허공에 찍은 도장(空印) · 진흙에 찍은 도장(泥印) · 물에 찍은 도장(水印)을 잊어버리면 원만함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문장 제7 '빛을 발산하는 주인의 지혜(發光主智)'에서는, 묻고 묻지 않는 가운데 빛을 전하는 지혜가 있으니, 고요한 빛으로 있음을 비추면 있음이 있음이 아니고, 밝은 빛은 공함을 비추면 공함이 공함이 아니고, 두 빛이 중도를 비추면 중도가 중도가 아니어서, 세 가지 빛이 다시 하나로 돌아가 원만해진다고 하였다.
문장 제8 '도장과 빛의 융통(印光融通)'에서는, 지혜에서 경계가 밝아서 부딪치는 곳마다 통연한 것을 도장(印)이라 하고, 경계에서 지혜가 원만하여 비추지 않음이 없는 것을 빛(光)이라 하니, 경계와 지혜가 융합한 것을 대법신이라 하고, 서로 통하여 비추는 것을 대반야라고 하며, 융합하고 통하는 것을 대해탈이라고 하였다.
문장 제9 '주인과 손님이 설하고 들음(主伴說聽)'에서는, 현묘한 절대의 진리는 설하는 주인과 듣는 손님이 없지만, 경계와 지혜가 주인이 되기도 하고 손님이 되기도 하여 반야의 공용을 끝없이 드러내 해탈의 덕으로 귀결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문장 제10 '주인과 손님이 함께 불도를 이룸(主伴同成佛道)'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항상 법신 · 반야 · 해탈의 세 가지 법을 설하고 들으니, 설하는 자, 듣는 자, 깨닫는 자, 깨달은 바의 경계마저 사라져 구경의 불도를 이룬다고 하였다.
문장 제11 '주인과 손님의 설함과 들음이 함께 공함(主伴說聽俱空)'에서는, 주인도 없고 손님도 없는 공왕전(空王殿)에서는 십지보살도 그가 누군지 몰라서 생각이 있으면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생각이 없으면 단견(斷見)에 떨어지며 그 중간에서 대공에 집착하면 단멸(斷滅)에 떨어지니, 그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곧장 수행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문장 제12 '다른 땅에서 그를 만남(別地逢渠)'에서는, 황금 누각에서 그를 만나니, 삼계(三界)를 집으로 삼고 사생(四生)을 자식으로 삼아 번뇌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온갖 방편으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하였다.
문장 제13 ' 여래선의 격식(如來禪格)'에서는, 교(敎)를 으뜸으로 삼는 불사문(佛事門)에서는 갖가지 언설(言說)로 일승(一乘)의 도리를 깨닫게 하므로, 여래선은 교학을 원만히 통달한 뒤에 곧장 진실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문장 제14 ' 조사선의 격식(祖師禪格)'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않는 선(禪)을 으뜸으로 삼는 조사문(祖師門)에서는 실오라기 한 티끌도 용납하지 않는 까닭에, 조사선은 곧바로 일승의 도를 초월하게 하여 크게 쉬는 자리에 이르게 한다고 하였다.
문장 제15 '불조융통선(佛祖融通禪)'에서는, 부처와 조사를 각각 아버지와 아들에 비유하여 부처의 방편인 교의 여래선과 조사의 방편인 선의 조사선이 궁극에서는 차별없이 동일하므로 부처와 조사가 융통하는 선이라고 하였다.
문장 제16 '세 가지 선을 융합하여 횡으로 상대하고 곧장 사용함(會融三禪橫對直用)'에서는, 여래선 · 조사선 · 불조융통선을 횡으로 상대함(橫對), 곧장 상대함(直對), 겸하여 상대함(兼對), 융합하여 상대함(融對) 등 네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문장 제17 '부처의 뜻은 흘러 통함(佛意流通)'에서는, 불사문은 부처의 어느 한 법도 저버리지 않으므로 성품 · 마음 · 생각 · 말 · 침묵 · 움직임 · 고요함 · 밝음 · 어둠 · 물질 · 허공 · 봄 · 여름 · 가을 · 겨울이 바로 부처의 온전한 몸이고 모든 조사의 면목이라고 하였다.
문장 제18 '조사의 뜻은 얻음 없음(祖意無得)'에서는, 조사문은 실오라기만큼의 가는 티끌도 세우지 않으므로 갖가지 법문이 모두 공적(空寂)하여 두 가지 법이 없으며 하나의 법 또한 없다고 하였다.
문장 제19 '모두 융합하면 형상이 없음(摠融無相)'에서는, 참된 마음, 참된 성품, 참된 설법, 참된 들음, 참된 부처, 참된 조사, 참된 선, 참된 교는 언어와 생각으로 분별하거나 이해할 수 없음을 밝혔다.
논설 제1 '자기 집안의 세 왕이 세 구슬을 길이 연마하는 격식(自家三王長鍊三昧格)'에서는, 잃어버린 일심(一心)의 본체(體) · 작용(用) · 중도(中)를 되찾는 과정을 세 명의 왕이 세 개의 구슬을 도적에게 빼앗겼다가 찾는 것에 빗대어 설명하였다.
논설 제2 '세 지위는 서로 비추고 서로 응함(三位互照互應)'에서는, 임금과 신하, 구슬과 도적, 본체와 작용이 하나의 근원으로써 서로 호응하여 원만함을 설명하였다.
논설 제3 '순당 두 글자의 격식(純堂二字格)'에서는, 오묘한 성품의 본체는 순수하고, 순수함을 회복한 마음의 작용은 당당하다고 하였다.
논설 제4 '향벽 두 글자의 격식(向壁二字格)'에서는, 방향을 돌려 벽을 맞대면 잡됨 없이 순수하여 고요히 하나가 된다고 하였다.
논설 제5 '예나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모두 벽을 마주함(古今學者皆向壁)'에서는, 최초구와 말후구, 선과 교, 조사선과 여래선의 같고 다름을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