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일(權用佾)
이어 안동 재산전투(才山戰鬪)에서 이만원(李萬原)과 동구에 매복해 있다가 변복하고 내습해오던 적을 크게 물리쳤다. 그러나, 의병의 피해도 적지 않아 전세가 크게 약화되었고, 6월에는 의병장 이강년이 붙잡혀 의진은 해산되었다. 뒤에 서울로 들어와 승지이던 김규흥(金奎興)·이범구(李範九)·김규철(金奎澈) 등과 모의, 고종의 청병조서(請兵詔書)를 받아 출국하던 중, 일행 3명은 붙잡히고 혼자 도주, 망명하여 광복이 되자 귀국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이강계창의일록(李康秊倡義日錄)』 - 『(영원한 의병장) 운강 이강년』(구완회, 지식산업사, 2015) - 『한말(韓末)의 제천의병(堤川義兵) : 호좌의진(湖左義陣) 연구(硏究)』(구완회, 집문당, 1997)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