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백춘(伯春), 호는 이우당(二憂堂). 이현(李𥙆)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성징(李星徵)이다. 아버지는 이형(李泂)이며, 어머니는 최대년(崔大年)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정언(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1689년에 지평(持平)이 되어 송시열(宋時烈)·윤증(尹拯)의 시비를 분별할 것을 상소하자 왕이 가납하였으며,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수찬(修撰)·교리를 임명하기 위한 제1차 추천기록)에도 올랐다.
이어서 정언·지평·부교리·헌납·이조좌랑 등을 역임하고서 함경도암행어사가 되었다. 곧 승지에 발탁되었다가 광주부윤(廣州府尹)을 거쳐, 1690년에 이조참의가 되어 진휼(賑恤)을 위한 공명첩(空名帖)의 남발에 따른 폐단을 상소하였다.
그 뒤 대사간·이조참의 등을 거쳐, 1693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고, 2년 후에 함경도관찰사를 거쳐 1697년 성주목사가 되어 혜정(惠政)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을 들었다. 1700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고, 이어서 공조참판·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연릉군(延陵君)에 봉하여졌다. 1796년(정조 20)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다. 공주의 부용당(芙蓉堂) 영당(影堂)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