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사가(士可). 호는 징강(澄江). 고려 말 문하주서(門下注書) 길재(吉再)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길대연(吉大淵)이고, 아버지는 성균생원 길면지(吉勉之)이며, 어머니는 최이한(崔以漢)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생원시에 합격하고, 1577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학유에 임용되었다. 1579년 어머니상을 당하여 일시 관직을 떠났다가 재차 예문관검열로 기용되어 신창현감(新昌縣監)을 지냈다. 1592년 병조정랑으로서 임진왜란을 맞아 선조를 호종하여 영변에 갔다가 어가(御駕)가 의주로 향하자 세자를 호종하였다.
그해 지평이 되고 이듬해 승문원교리 및 지평·헌납·직강 등을 역임하였으며, 선조가 환도할 때 연(輦)에 오르자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인용하여 연을 버리고 말을 타고 돌아갈 것을 주청하여 흔쾌한 윤허를 받았다.
이후 재차 헌납·장령 등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였다. 죽은 뒤인 1603년에 호종한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추록되었다. 품성이 단아하고 지조가 굳었으며 경학(經學)에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