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응교, 전한, 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공택(公擇)
기재(奇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15년(중종 10)
사망 연도
1558년(명종 13)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직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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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응교, 전한, 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공택(公擇), 호는 기재(奇齋). 권상(權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희맹(權希孟)이고, 아버지는 권응정(權應挺)이며, 어머니는 김엽(金燁)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4년(중종 39)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부수찬으로 나숙(羅淑)·조언수(趙彦秀) 등과 더불어 언로의 개방을 청하였다. 이듬해에는 부교리로서 한두(韓㞳)·주세붕(周世鵬)과 함께 적서의 구별을 엄히 할 것을 주장하였다. 1547년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1552년에 홍문관부교리로서 경연시강관(經筵侍講官)을 겸직하였으며, 홍문관전한을 거쳐 춘추관기주관으로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4년(명종 9) 홍문관전한이 된 뒤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1556년에 부응교를 거쳐, 이듬해 암행어사로 경기지방에 파견되었다.

그해 응교를 역임하고 시강관이 되었는데, 이때 인재의 보고(寶庫)라 할 남방교육의 진흥을 위하여 향교에서 교육받고 있는 자 가운데 나이는 많고 재주가 없는 자는 군액(軍額)으로 정하고, 나이 어린 자는 그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주장하였다. 같은 해 전한·직제학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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