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홍균(陸洪均)
1950년 5월 제2대 민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선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1951년 7월 민우회에 가입했다가, 그해 11월 자유당 창당을 위한 신당준비위원회 조사부 간사로 선임되었다. 1951년 7월부터 1953년 1월까지 민우회, 자유당, 무소속, 신라회, 무소속구락부, 원외자유당파로 여섯 번 당적을 바꾸었다. 그 뒤 정치적 재기에 실패하고, 1969년 9월, 3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대책위원회 공화당 고문으로 위촉되었으며, 1972년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10월 유신을 지지하는 성명서 발표에 동참했다. 1983년 7월 5일 사망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