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빈(金亨彬)
그리고 1922년 5월 최석순으로부터 독립단의 방해자인 김하룡(金河龍)에 대한 처단 지시가 있자, 안봉선(安奉善)·백인식·박정학(朴正學) 등과 협의한 뒤, 환인현(桓仁縣) 이차구(裡岔溝) 산중에서 그를 주살하였고, 이어서 냉수천자(冷水泉子)에서 박병선(朴炳善)으로부터 10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3년 7월경 참의부(參義府) 참의장 겸 제2중대장인 최석순의 휘하에 속해 있었는데, 이 부대는 집안현에 있는 고마령(古馬嶺)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29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분산되었다. 여기에서 탈출하여 초산읍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지만, 1929년 9월 초산경찰서 밀정의 밀고로 붙잡히고 말았다. 1930년 2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7호 위반 및 살인강도죄로 형을 선고받고, 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