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선(1923~2011)은 해방 이후 『한국의 인쇄사』, 『한국의 무속사』 등을 프랑스어로 저술한 학자이다. 1955년 프랑스 파리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였다. 1972년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서 『직지심체요절』이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73년 앞선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알렸다. 이 일로 ‘직지심경의 대모’로 불린다. 1975년에는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하여 대한민국 내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에 불을 지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던 청사를 찾아내기도 했다.
1923년 전주에서 삼남 이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50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였고, 1955년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서른 세 살의 나이에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것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를 꼭 찾아보라는 대학교 시절 스승 이병도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규장각 의궤를 찾던 중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게 되었다. 『직지심체요절』의 가치를 밝혀내기 위해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직지심체요절을 출품하였고 이를 통해 직지심체요절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성경책보다 무려 73년이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본이 세계 최고(最古)라는 유럽의 사관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75년에는 20년 동안 찾아 헤매던 외규장각 의궤의 행적을 밝혀내었다. 이 의궤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베르사유 분관 폐지 창고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돼 있었다. 외규장각 도서들은 발견 당시 중국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1979년 프랑스 도서관에 사표를 내고 나온 박병선은 『왕실의궤』의 해제서를 내는 작업을 한다. 1980년부터 시작된 해제 작업은 10년이 걸려 1990년에 끝났다. 해제 작업을 마쳤지만 상업성이 없어 프랑스에서 출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 편지는 서울대 규장각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던 이태진 교수에게 전달되었다. 1992년, 서울대의 지원으로 불어판 해제서, 『Régles Protocolaires de la Cour Royale de la Corée des Li, 1392~1910』이 세상에 나왔다. 도서관에서의 일을 그만둔 뒤, 박병선은 콜레주 드 프랑스(Collége de France)의 동양학 전공 프랑크 교수의 연구원이 되어 연구 활동을 계속하였고, 풍부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 외규장각 도서를 조명하여 한국인의 문화적 긍지를 높여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인 노력 끝에 2011년 5월 27일 297책의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 만에 대한민국 땅으로 돌아왔다.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2008년) 후속편으로 병인양요를 둘러싼 프랑스 정세와 조선을 침략한 로즈(Pierre-Gustave Rose, 1812~1882) 제독의 보고서 · 공문서 · 친필자료 등 프랑스 측 자료를 번역 · 정리하여 집필을 마무리하던 중 2011년 11월 프랑스 현지에서 향년 83세로 사망하였고,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면서 1890년대 초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로 재직했던 꼴랭 드 플랑시가 한국에서 반출한 『직지심체요절』이 소장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연구 및 고증을 통하여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1972년 유럽에서 개최된 세계 동양학 대회 및 파리국립도서관이 주최한 “BOOKS” 전시회에서 공개하여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했으며,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되는 데도 기여하였다. 1975년 베르사이유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관 수장고에 방치되어 있던 『외규장각의궤(外奎章閣儀軌)』 191종 297권을 발굴,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거쳐 1978년 일반에 공개되도록 했으며 한국 반환운동을 계속하는 동시에 10여년의 연구를 통해 『외규장각의궤(外奎章閣儀軌)』 297권의 해제를 완성하는 등 관련 연구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다. 계속해서 문화유산 발굴과 반환운동 이외에 의궤 · 인쇄 · 병인양요 · 독립운동 등과 관련된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인쇄사』(프랑스어 · 스페인어 · 영어 · 한국어)가 있고 『한국의 무속사』, 『한국의 역사』 등을 프랑스어로 펴냈다.
문화적 투사이자 수도승과 같은 노력이 뒤늦게 인정되어 박병선은 1998년에 청주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았고, 1999년에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1년에는 한국 방송국 KBS가 주관하는 ‘해외동포상’을 수상하였고, 2004년에는 대한인쇄정보기술협회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또한 그는 최근 한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었던 청사를 발견하였고, 2006년에는 프랑스 외교 고문서 발굴 작업을 하여 한불관계 자료 정리에도 기여하였다. 2007년에는 한국 대통령상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다. 2009년 26회 가톨릭대상 특별상과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 제7회 경암학술상 특별공로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