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흥군(慶興郡)
1586년(선조 19) 이순신(李舜臣)이 조산보만호 겸 녹둔도둔전관으로 부임, 여진 토벌에 큰 전공을 세웠다. [근 대] 1921년 웅기가 개항되고, 다시 1931년 읍으로 승격함과 동시에 군청을 이곳으로 옮겼으며, 1934년에는 지난날의 신안면을 나진읍으로 하였다가 나진항이 대륙의 종단항으로 지정됨에 따라 이듬해 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고, 1940년에는 탄광 개발 및 인조 석유 공장의 건설과 더불어 상하면이 아오지읍으로 승격하였다. 1945년 당시의 관내 읍면 수는 2개 읍 3개 면이며, 호수는 2만 763호, 인구 9만 7957명에 이르렀다. 근대 인물로는 구한말 개화기에 법부협판을 지낸 김학우(金鶴羽), 학부협판이었던 김홍륙(金鴻陸), 서북학회(西北學會)의 지도자로 민족 문화의 창달과 애국 정신의 고취를 위하여 헌신한 김주병(金柱炳),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