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신중(信仲). 송간(宋侃)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현감 송관(宋寬)이다. 송대립(宋大立)의 아우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의 군관(軍官)으로서 영남지역에의 원병파견을 주장하였고, 지도만호(智島萬戶)가 되어 형 송대립과 함께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에서 적에게 포위된 명나라의 제독 진린(陳璘)을 구출하였으며, 1601년(선조 34) 양산군수·다대포첨절제사(多大浦僉節制使)를 지내고,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흥양(興陽: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의 세충사(世忠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