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창적(禹昌績)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652년 사직서참봉, 광흥창봉사(廣興倉奉事), 호조좌랑을 역임하였다. 그 뒤 1660년(현종 1) 좌랑으로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의성현령을 거쳐, 1662년 황해도도사가 되고, 이어 1664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정언(正言)이 되고,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1669년 배천군수에 이어 1672년 장령(掌令), 1675년(숙종 1) 사간·집의(執義)·장령(掌令)이 되었다. 이듬해 동부승지가 되고, 1679년 황해도관찰사, 1689년 동지의금부사·개성부유수가 되었다. 그 뒤 1691년 호조참판·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거쳐, 이듬해 경기도관찰사 되었으며, 1693년에는 병조참판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