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金鎧)
이듬해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가 된 뒤 1544년 정언(正言), 1546년(명종 1) 수찬(修撰), 1548년 검상(檢詳)·장령(掌令), 이듬해 집의(執義)·응교(應敎), 1550년 선공감정(繕工監正)을 차례로 역임하여 이듬해 구황 겸 선위사(救荒兼宣慰使)로 청홍도(淸洪道)에 파견되었다. 1552년 동부승지(同副承旨), 1554년 형조참의가 되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57년 청홍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이어서 대사헌과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1563년 형조판서, 1564년에는 호조판서가 되었다. 1569년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조광조(趙光祖) 등을 현자로 추대할 때에 조광조를 비방한 사실이 드러나 기대승(奇大升) 등의 탄핵을 받고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시흥으로 낙향하여 있다가 분사하였다. 관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