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자경(子慶), 호는 이송거사(二松居士). 할아버지는 장령 민익수(閔翼洙)이고, 아버지는 대사성을 민백분(閔百奮)이며, 어머니는 심중현(沈重賢)의 딸이다. 민유중(閔維重)의 4대손이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할아버지다. 한양에서 살았다.
문사(文詞)가 일찍 성취되어 약관에 상상(上庠)에 올랐다. 정조 초년에 아버지가 여주에 은거하자, 문을 닫고 어버이를 봉양하면서 오로지 학문에만 힘을 기울였다. 왕은 민기현의 효행 소식을 듣고 1798년(정조 22)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에 임명하고, 이어 고창현감을 제수하였다. 1800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부수찬이 되었다.
이듬해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뽑히고 함경도 암행어사가 되어 길주목사 이징만(李澄萬) 등 여덟 고을 수령의 불치상(不治狀)을 보고하였다. 그 뒤 외직으로 충청감사를 거쳐 대사간·이조참의·부제학·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1809년 예조참판이 되었다. 이어 개성유수로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죽었다. 관직에 있을 때는 온건한 처신을 하여 칭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