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공무(公茂). 승지 박세성(朴世城)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박필정(朴弼鼎)이고, 아버지는 박사한(朴師漢)이며, 어머니는 김창협(金昌協)의 딸이다.
1743년(영조 19)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설서(說書)를 거쳐, 정언(正言)이 되었을 때는 차대(次對)할 때 왕에게 주달(奏達)한 말의 기록을 고치려 하다가 삭탈관직을 당하였다.
그 뒤 복관되어 사서(司書) · 교리(校理)를 역임하였다. 1765년(영조 41)에는 대사간에 재직시 이담(李潭)을 논핵(論劾)하다가 죽음을 당한 남강로(南絳老)의 신원(伸寃)과 그 복작(復爵)을 청하다가 흑산도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저서로는 『연설가관(筵說可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