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륜(聖倫), 호는 중암(重菴). 아버지는 완이다. 1779년(정조 3) 12세 되던 해부터 임금의 총애를 받고 궁궐에 출입하면서 응제시(應製詩)를 지어 올렸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이기설(理氣說)을 토대로 하는 당시의 보편적 학문성향을 탈피하고 고증학적(考證學的)인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구명(究明)하는 데 전념하여 전도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1797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정국(金鼎國)에 의하여, 주문모(周文謨)와 접촉하면서 천주교 교리를 배우며 요언(妖言)으로 민심을 혼란시킨다고 보고되어, 형조의 탄핵을 받아 그 해 11월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이어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옥사하여 주문모와 함께 효수되었다. 저서로는 고증적 자료가 다수 수록된 『중암고』 8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