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무안박씨(務安朴氏) 영해파(寧海派)의 입향조인 박지몽(朴之夢)의 손자인 경수당 박세순(朴世淳)의 종택이다.
종택은 임란 때 선무원종공신이며, 절충장군 검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역임한 경수당 박세순이 32세 때인 1570년(선조 3)에 99칸 규모로 건립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 건물은 선생의 장증손인 박문약의 우연한 실화로 인해 1668년(현종 9)에 소실되었는데, 건물이 손실된 후 박문약은 3일간 소복을 입고 통곡한 후 재건에 힘을 기울여 1713년(숙종 39)에 현재의 규모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종택은 정침(正寢 : 집안의 중심이 되는 곳)과 대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칭의 정면에는 일각문을 세워 별도의 출입구를 두었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6칸 규모의 ㅁ자형 건물인데 전면 우측에 2칸이 돌출되어 편날개집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가구(架構)는 대량(大樑)위에 다소 키가 큰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간결한 구조의 3량가이다. 대칭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좌측간에 전후로 2칸의 대청방을 두고 우측칸은 모두 마루방으로 꾸몄는데, 대청의 청방간에는 3분합과 2분합의 맹장지를 설치하였다.
대칭의 3면에는 모두 굽널띠살문을 달았으며, 대청방의 3면에는 띠살문을 사용하였다. 주상은 초익공(初翼工)으로 장식하였다. 가구는 5량가인데, 중도리받침의 중대공(中臺工)은 포대공형(包臺工形)이며 종량상의 마룻대공은 파련형(波蓮形)이다. 측면상부에는 충량을 들보위에 걸치고 충량상부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