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영연(瑩然), 호는 죽유(竹牖). 사직(司直) 구세영(具世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장 구담(具曇)이고, 아버지는 증 승지 구대륜(具大倫)이며, 어머니는 전설사수(典設司守) 이윤증(李胤曾)의 딸이다. 구위(具煒)의 동생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는데, 이때 폐모논의(廢母論議)가 일어나자 전주의 유응원(柳應元)이라는 자가 이에 찬동하는 통문을 구영에게 보냈다.
분연히 고산현(高山縣) 향교의 제생(諸生)들과 더불어 반대의 항의문을 지어 이를 배척하고 유응원의 통문을 불살랐다.
인조반정 후 고산현감이 유일(遺逸: 산림의 선비로서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은 학문과 명망이 높은 인물)로 천거하려 하였으나 극력 사양하였고, 1626년(인조 4) 처음으로 활인서 별좌를 배수받았다.
이듬해 정묘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강화로 대가(大駕)를 옮기려 하자 유태형(柳泰亨)과 더불어 묘당에서 부당함을 역설하여 그치게 하였으며, 곧 체찰사 이원익(李元翼) 예하의 호소부사(號召副使)가 되었다.
1628년 사도시직장(司䆃寺直長)으로 승진되었다가 곧 그 직에서 물러났으나, 호종공신(扈從功臣)에 녹공되어 사과(司果)가 되었으며, 1644년 다시 별좌·감찰을 거쳐 회인현감(懷仁縣監)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