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용부(庸夫), 호는 습재(習齋). 권진(權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흥(權興)이며, 아버지는 권삼(權參)이다.
1411년(태종 11) 소과를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414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직강 등 여러 관직을 지내고, 1439년(세종 21)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446년 평안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기민(飢民)의 구제를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로 이듬해에 장성에 유배되었다.
1448년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1450년 형조참판에 올랐는데 충청도관찰사 재직시, 세종조에 새로 제정된 연분구등(年分九等)·전분육등(田分六等)의 공법(貢法)을 비판하였으며, 이조참판 때에는 관찰사가 목(牧)의 행정을 겸하도록 하는 겸목제(兼牧制)의 실시를 반대, 중지하게 하였다.
관직은 중추원부사를 거쳐 1453년(단종 1) 행첨지중추원사에 이르렀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시문이 다수 전한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에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