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근(楊根). 자는 의지(義之), 호는 의암(毅菴). 양근김씨(楊根金氏)의 시조이다. 조상과 가계가 불분명하나, 1376년(우왕 2)에 북청천호(北靑千戶)이었던 점으로 보아 북청지방의 토호이었던 것 같다.
1383년 이성계(李成桂)가 동북면에서 안변으로 오던 중 밭 가운데 있는 뽕나무 위의 새 두마리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자, 밭에서 김을 매던 김인찬은 이를 보고 감탄하여 한충(韓忠)과 함께 이성계의 부하가 되었다고 한다.
무재(武才)가 있었으며, 1388년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서 회군한 뒤 1390년(공양왕 2)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고 1392년에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올랐다. 조선 개국 후 중추원사(中樞院使)·의흥친군위동지절제사(義興親軍衛同知節制使)로서 태조의 친병(親兵)을 통솔하는 책임을 맡았으나 곧 죽었다.
죽은 뒤 개국공신 1등으로 익화군(益和君)에 추봉되고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郎贊成事)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