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할아버지는 김훈(金薰)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세필(金世弼)이며, 어머니는 이탁(李鐸)의 딸이다.
1539년(중종 34)에 유학으로서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그 뒤 검열(檢閱)이 되었다. 1542년에 심한 흉년이 들자 경상도와 충청도에 어사로 파견되어 이를 진휼하였고, 인종 초년에는 시독관으로서 경연에 참여하였으며, 곧 교리(校理)·지평(持平)이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에 관련되어 관직을 삭탈당하고 삼수에 유배되었으며 이듬해 사사되고 가산과 처자도 적몰되었다. 선조 즉위 후 복권문제가 논의되다가 1570년(선조 3)에 다른 10여 명과 함께 복권되었다. 정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