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의산(義山). 평안북도 영변출신. 아버지는 김응봉(金應鳳)이다.
1924년 영변에 잠입한 통의부(通義府) 결사대원 정문빈(鄭文彬)·김봉식(金鳳植)의 권유로 현지에서 결사대원에 가입하여 권총과 실탄 30발을 받고 그들과 함께 행동하였다.
그 뒤 만주의 본대에 가서 군사훈련을 받고, 1925년 3월 국내에 잠입하여 일제의 중요시설을 파괴하고 일본경찰과 친일분자들을 제거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라는 밀명을 받았다.
그 때 통의부 국내파견 결사대원 정문빈·김봉식·김경포(金敬浦)·채무식(蔡武植)·이정운(李貞雲)·김병운(金炳雲) 등과 압록강을 건너 국내에 들어와 안주·박천·영변·개천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였다.
같은해 4월, 개천 북면 김덕린(金德麟)의 집에 숨어 있던 중, 이장의 밀고로 출동한 일본경찰의 습격을 받아 정문빈·김봉식과 함께 잡혔다. 1926년 11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48년 제주도폭동사건이 일어나자 지휘관으로 공비토벌에 공을 세웠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서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