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효선(孝善), 호는 신재(新齋)·문암(文巖). 김지(金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성경(金成慶)이고, 아버지는 판관인 김보(金俌)이며, 어머니는 사용(司勇) 최계강(崔繼江)의 딸이다.
학행이 고명하고 충절이 높아 1518년(중종 13)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었으며, 152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주서(注書)·정언(正言)·경성판관(鏡城判官)을 역임하였으며, 1541년 홍문록(弘文錄)에 오른 뒤 이듬해 교리(校理)와 부응교(副應敎)를 거쳐 헌납(獻納)이 되었다.
전적(典籍)으로 재임 중 1545년(명종 즉위년)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향리인 선산으로 돌아갔다가, 1547년(명종 2) 다시 순창으로 귀양갔으며, 11년 동안 적소에서 지내다가 사망하였다.
1570년(선조 3)에 신원되어 직첩을 돌려받았다. 학문이 순수하고 바르며, 충효와 대절(大節: 큰 절개)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