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하여 관리하다가 202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3.1m. 사찰 중심을 약간 벗어난 북쪽 언덕에 있는데 주위에 흙담장을 쌓고 그 안에 탑비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
보존상태는 양호하여 상륜부(相輪部)까지 모두 남아 있고 탑비는 뒷날 보완한 것으로서 귀부(龜趺)와 함께 석조부도의 전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지대석은 방형의 2단으로 구성되었고 각 부재와 똑같이 세련된 모습을 보이며 별다른 조식(彫飾)은 없다. 기단부는 상 · 중 · 하대석으로 이루어졌으며 모두 8각이고 각기 다른 돌로 조성하였다.
하대석은 1단이며 하단부에는 각형 1단의 높직한 굄이 조각되었고, 그 측면에는 각 면에 2구씩의 가늘고 긴 안상(眼象)을 오목새김하였는데, 그 선각(線刻)이 매우 예리하여 시대적인 특징을 잘 보이고 있다.
또한, 하대석은 현저하게 위는 좁고 아래는 넉넉한 형태이므로 측면에서 보면 사다리꼴로 측면에 1좌씩의 사자상을 돋을새김하였다.
이 사자들은 모두 그 방향이 다르고 머리와 전 · 후 양다리 부분의 형태도 달리하고 있으며, 특히 머리카락과 뒤꼬리가 올려져 유려한 곡선을 보이고 있으므로 움직이고 있는 사자의 모습을 조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대석 위에는 중대를 받는 굄대가 마련되었는데 형태는 8각이며 높직한 각형 1단 위에 낮은 각형의 3단 굄이 각출되었다. 중대석은 8각의 면마다 조식이 있는 가늘고 긴 안상을 1구씩 두었으며 높이가 매우 낮은데 이러한 현상은 선례인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국보, 1962년 지정)에서도 같음을 볼 수 있다.
상대석은 하면에 낮은 각형 받침 3단을 8각으로 각출하여 그 밑의 중대석 굄 3단과 대칭을 보이며, 하면에도 각형의 3단 굄을 각출하고 그 위의 부재를 받고 있다.
상대 측면에는 단엽의 앙련(仰蓮)을 3중으로 조각하였는데 하단에 1렬의 앙련이 있고 그 위에는 2엽(二葉)이 겹쳐 있어 3중이며, 이 연판 내에는 종선(縱線)이 중심에 돋을새김되었을 뿐 별다른 장식이 없으나, 주연과 판단부(瓣端部)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탑신 굄대는 기단 상대석과 같은 돌이며 상면에 각출한 3단의 각형 굄 위에 마련되었는데 각 측면에 조식이 있는 가늘고 긴 안상을 2구씩 배치하였다.
상단부에는 갑석형(甲石形)을 두르고 있는데 그 하면에 부연(副椽)과도 같은 낮은 각형 받침을 1단 각출하고 상면에는 각형 · 원호 · 각형의 순서로 3단의 굄을 마련하여 탑신석을 받고 있되, 원호의 굄은 상 · 하의 각형보다 넓으며 여기에 복엽 복판(覆瓣)의 연화문을 둘러서 한층 화사한 굄대를 이루고 있다.
탑신석은 각 면에 양 우주(隅柱: 모서리기둥)를 각출하고 전후면에 문짝형태를 모각하였으며 그 좌우 측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였다. 옥개석은 넓은 편이며 하면에는 각형의 서까래 형태를 2중으로 조각하고 있어 목조건축의 양식을 모방하고 있다.
이러한 목조가구(木造架構)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음은 상면과 추녀 끝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옥상(屋上)의 낙수면에는 8면의 합각에 굵은 우동(隅棟: 옥개석의 귀마루)이 있고 그 사이에 기왓골이 표현되었다.
추녀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각 모서리에 이르러서는 약간 급하게 반전되었으며, 추녀에는 막새기와로써 기왓골의 막음을 취하였는데 여기에는 암막새와 수막새의 윤곽을 조각하여 목조건축의 막새기와를 연상하게 할 만큼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상륜부는 옥개석 정상에 2단의 각형 굄을 각출하여 받고 있는데 앙화(仰花) 위에 복발(覆鉢)과 보륜(寶輪) · 보주(寶珠) 등이 차례로 잘 남아 있다. 앙화도 8각으로 아랫면에는 1단의 각형 받침이 각출되었고, 각 모퉁이에 1판씩 배치한 입상형(立狀形) 앙련에는 판내에 원대(圓帶)와 연주문(連珠文)을 비롯하여 각종 화문이 조식되었다.
복발은 일반형 석탑에서와 같이 원형이며 측면에 횡대(橫帶)가 둘려 있고 3층의 원형 보륜에는 각기 측면에 8판의 앙련이 조각되었는데, 각 연판 내에는 구슬무늬와 각종 꽃무늬를 장식하였다. 보주는 정상의 보륜 위에 높직한 원대를 마련하고 그 상면에 낮게 조각하였다.
이와 같이 상륜은 하단부의 앙화부터 정상의 보주까지 많은 화문을 조식하고 있으므로 하단 기부의 화사한 장식들과 잘 어울려서 전체적으로 보아 장엄하게 보인다.
부도의 옆에 있는 탑비에는 선사의 행적을 비롯하여 당시의 사찰 및 건탑 · 건비 등 여러가지 내용을 적은 비문이 있다.
이 비문에 의하면, 부도의 주인공인 적인(寂忍)은 785년(원성왕 1)에 출생하여 861년(경문왕 1)에 입적한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고승으로서 대안사의 개산조사(開山祖師)인 혜철(慧徹)이다. 따라서, 이 부도의 건립연대도 혜철이 입적한 861년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