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정언(廷彦), 호는 양직(養直). 할아버지는 경상좌상좌우후 도흠조(都欽祖)이며, 아버지는 한성부윤 도원결(都元結)이다. 정구(鄭逑)·서사원(徐思遠)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사원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군량을 조달하였다. 1611년(광해군 3) 5월, 정인홍(鄭仁弘)이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의 문묘 종사를 반대하자 상경하여 손처눌(孫處訥) 등과 이언적·이황을 변무(辨誣: 사리를 따져 억울함을 밝힘)하고 그 해 8월 오현(五賢)의 문묘 종사 때에 신판(神版)의 글씨를 썼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하여 세상을 등지고 지내다가 일생을 마쳤다. 대구의 용호서원(龍湖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는『성리정학집(性理正學集)』, 「체용각분도(體用各分圖)」, 「오경체용합일도(五經體用合一圖)」가 있다. 문장과 행실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