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9년(충선왕 1)에 영동지방 고을원들이 모여 용화회주(龍華會主)인 미륵불이 인간세상에 내려와 중생들을 구제해주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향나무 2,500주를 각 포진(浦津)에 나누어 묻기로 결정하자, 삼척현위(三陟縣尉) 조신주(趙臣柱)가 삼척부 남쪽 맹방리에 향나무 250주를 묻고 미륵불이 하강하기를 기원하였는데, 그 장소를 매향안(埋香岸) 또는 매향맹방정(埋香孟芳汀)이라 한다.
그 뒤 조선조 명종 때 최련(崔連)이 지은 정양재(正養齋)를 영조 때 홍계하(洪啓夏)가 해운정으로 옮겨 지었으며, 1830년(순조 30) 부사 이광도(李廣度)가 중수하고, 홍진국이 중수기를 썼으나 지금은 없다.
1960년대 초에 해운정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남양홍씨(南陽洪氏) 삼척입문시조인 홍준(洪濬)의 유업을 기리기 위하여 삼척교수당(三陟敎授堂)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