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처자는 경상북도 영천군 출신으로 평소 신기(神氣)가 있어 예언을 잘하는 것으로 경상도 일대에 소문이 나 있었다.
당시 크게 일어나고 있었던 보천교(普天敎)의 교주 차경석(車京石)이 1921년경상남도 함양군에 위치한 황석산(黃石山)에서 천제(天祭)를 지낼 때 자기가 천자(天子)가 되기 위해서는 그녀와 결혼해야 한다고 접근하였지만 그녀는 자리를 피함으로써 그의 청혼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1937년 보천교의 고위 간부 중 한 명이었던 서상섭(徐相燮:일명 正一)이 신명(神明)의 계시를 받았다며 그녀를 찾아와 받들기 시작하자, 그녀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종교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일제의 탄압이 시작되면서 종단활동은 중지되고 말았다.
1946년 여처자는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계룡리(용화동)로 교단본부를 옮기고 선도교(仙道敎)라는 교명으로 포교활동을 다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1953년 그녀가 사망한 후, 서상섭, 이영우(李英雨), 이우석(李禹錫), 김경선(金京善), 정기승(鄭基乘) 등이 각각 수십 명의 교인들을 이끌고 분리되어 나가고, 또한 종단 내의 일부 신도들이 무을교(戊乙敎)라는 별도의 종단을 설립함으로써 교세는 크게 약화되었다.
선도교는 그 후 모악교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악교의 신앙 대상은 여처자 생존시에는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증산(姜甑山:본명은 姜一淳)이었지만,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는 여처자도 함께 받들어지고 있다. 또한 단군(檀君)과 수운(水雲:동학의 창시자 崔濟愚의 號)의 신위(神位)도 모시고 있다.
강증산은 개벽주(開闢主) · 미륵불(彌勒佛) · 옥황상제(玉皇上帝) · 증천상제(甑天上帝) 등으로 부르며, 여처자는 인정상관(人情上觀) · 여본주(余本主) · 상감(上監) 등으로 부른다. 4대 본의(本義)는 숭천(崇天) · 지은(地恩) · 경조(敬祖) · 인존(人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