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중률(仲律). 장흥 출신. 고려 강성군(江城君)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무예에 뛰어나 자칭 장군이라 하였다. 1591년(선조 24)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1597년 재침한 왜적들과 남원에서 싸우다가 몇 겹으로 포위되자, 옷소매에 혈서하고 격전 끝에 이복남과 함께 전사하였다. 남원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