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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정(房元井)

유교인물

 조선후기 삼례찰방,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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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삼례찰방,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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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이정(而淨), 호는 지족와(知足窩). 아버지는 방덕화(房德驊)이며, 어머니는 남원양씨(南原楊氏) 부사(府使) 양홍손(楊洪孫)의 딸이다. 방원정은 왜란(倭亂) 중에 남원(南原)에서 유복자(遺腹子)로 출생하여 어머니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오정길(吳廷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618년(광해군 10)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동지들과 합세하여 각 읍에 격문을 발송하는 한편 의병과 군량을 모아 전주(全州)에 이르러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귀향하여 모았던 군량을 관아의 군비(軍費)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도 형 방원진(房元震)과 재종형(再從兄) 방원량(房元亮)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주(淸州)에서 적을 대파하고 계속 진격하여 과천(果川)에 이르러 야간공격을 감행하여 적을 크게 무찌르고 노획물을 대량으로 거두었으나 곧이어 강화(講和)의 소식을 듣고서 해산하였다.
그 후 1646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 해에 삼례찰방(參禮察訪)에 재직하면서 주민들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한편 다방면에 걸친 민폐를 혁신시켰으며, 국가의 시장정책(市場政策)의 허점을 간파하고 원활한 시장경제를 통해 부국(富國)의 실효를 거둘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외교정책(外交政策)·흉년구제책(凶年救濟策)·유언비어(流言蜚語)·역술(曆術) 등을 포함한 다방면에 매우 깊은 식견을 지녔으며, 한때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재임하였다. 저서로는 『지족와집(知足窩集)』 2권 1책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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