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충서난록 ()

분충서란록
분충서란록
불교
문헌
임진왜란 때의 의승장 사명 유정의 전란 관련 기록을 모아 1739년에 문손 태허 남붕이 간행한 책.
이칭
이칭
송운대사분충서난록(松雲大師奮忠紓難錄)
문헌/고서
편찬 시기
1739년(영조 15)
간행 시기
1739년
저자
사명 유정(四溟惟政)
편자
태허 남붕(太虛南鵬)
권책수
(1권/2권) 1책
권수제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송운대사분충서난록(松雲大師奮忠紓難錄)
판본
목판본
표제
분충서난록, 송운대사분충서난록
소장처
밀양 표충사, 국립중앙도서관, 동국대 중앙도서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내용 요약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은 임진왜란 때의 의승장 사명 유정(四溟惟政)의 전란 관련 기록을 모아, 1739년에 문손 태허 남붕(太虛南鵬)이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1738년 유정을 제향하는 밀양 표충사가 사액사우로 지정된 것과 관련이 있다. 이를 주도하여 표충사 도총섭이 된 남붕이 유정 관련 기문을 모아 이 책을 펴냈으며, 유정이 일본군 진영에 들어가서 보고 들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와 상소문, 일본 승려에게 보낸 편지, 표충사 관련 기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정의
임진왜란 때의 의승장 사명 유정의 전란 관련 기록을 모아 1739년에 문손 태허 남붕이 간행한 책.
저자 및 편자

저자인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은 호를 송운(松雲)이라고도 했으며 청허계 사명파의 조사이다. 경상도 밀양 출신으로 1561년 승과 급제 후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법맥을 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원도에서 의승군을 일으켰고 8도 도총섭으로서 전투, 산성 수축, 군량 조달 등을 총괄했다. 1604년에는 왕명으로 일본에 가서 에도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외교적 교섭을 했다.

저서로는 이 책과 함께 시문집 『사명당대사집』이 있다. 편자인 태허 남붕(太虛南鵬, ?∼1777)은 편양파 설송 연초(雪松演初, 1676∼1750)의 제자이지만 편양파의 선과 사명파의 교를 모두 통합했다는 법맥 인식을 내세우며 유정의 5세 법손임을 표방했다. 1738년 표충사를 사액사우로 지정받고 도총섭이 되었으며 1739년 유정의 전쟁 관련 기문을 모은 『분충서난록』을 간행했다.

서지 사항

1권 또는 2권, 1책. 목판본. 1739년(영조 15) 밀양 표충사(表忠祠)에서 개간했다. 중례(中禮) 김재로(金在魯)의 서문(1738)과 어유구(魚有龜)의 서문(1739), 송인명(宋寅明)의 발문(1738)과 윤봉조(尹鳳朝)의 발문(1738), 신유한(申維翰)의 발문(1738), 사문(沙門)인 명학(明學)의 발문(1739)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유정의 5대 법손인 태허 남붕이 밀양 표충사 주7 과정에서 그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유정의 유고를 모아 출간하게 되었다. 남붕이 원래 ‘골계도(滑稽圖)’라고 이름했지만 서문을 쓴 김재로가 ‘분충서난록’으로 서명을 바꾸고 신유한에게 교정과 주6을 의뢰하게 했다. 신유한은 주9을 보면서 주8을 붙이고 발문도 썼다.

구성과 내용

본서는 적진을 탐지한 보고서 및 상소문 7편, 일본 승려에게 보낸 서한 4편,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진영에 가서 담판한 내용과 적진의 허실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청정영중탐정기(淸正營中探情記)」에는 당시 화친의 조건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적의 정황을 보고한 「별고적정(別告賊情))」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명나라 심유경(沈惟敬) 사이의 화친 조약 체결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던 가토와의 대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명나라 제독이었던 유정(劉綎)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왕알유독부언사기(往謁劉督府言事記」도 주목된다.

상소문 가운데 「토적보민사소(討賊保民事疏)」는 승군을 모아 활동한 사실과 정세 분석, 보국 책략이 주된 내용이고, 「을미상소언사(乙未上疏言事)」에서는 민력(民力)을 키우고 인사(人事)에 힘쓸 것을 주장하고 있다. 편지글은 승태(承兌) · 원길(元佶) · 현소(玄蘇) 등 일본 승려에게 보낸 것이다.

부록에서는 유정과 관련된 기록을 『지봉유설(芝峯類說)』 등 여러 문헌에서 발췌하여 실었는데, 유정을 추모하기 위한 각종 글, 고위 관료와 주10들이 지은 시문 등이 수록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에 건너갈 때 전송한 시(詩) 19편, 만사(挽詞) 1편, 진찬(眞贊) 3편이 실려 있는데, 이항복(李恒福), 이덕형(李德馨), 주2, 이산해(李山海), 이수광(李晬光), 이식(李植), 권율(權慄) 등의 주3가 들어있다. 이 밖에 표충사 관련 주4도 말미에 수록되어 있다.

의의 및 평가

이 책을 통해 임진왜란 때 8도 도총섭으로서 의승군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적진을 탐문하고 외교에도 공을 세운 사명 유정의 활약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더욱이 당시 조선을 둘러싸고 펼쳐진 명과 일본의 외교전과 강화 조건의 허실, 일본군의 상황과 조선에 대한 인식, 조선 사회의 긴박한 현실과 민심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의 보고이다. 또 유정을 향사하는 밀양 표충사의 사액사우 지정과 이 책의 간행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승 활동의 추숭과 현창, 계승 의식에 관해서도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

참고문헌

원전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단행본

이상현 옮김. 『송운대사분충서난록』(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조선 20, 동국대학교출판부, 2015)

논문

김용태, 「조선후기 사명대사 인식의 생성과 대중적 확산」(『동아시아불교문화』 36,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8)
유호선, 「청천 신유한의 불교관 연구- 『분충서난록』을 중심으로」(『불교학연구』 8, 불교학연구회, 2004)
주석
주1

헛되이 잃음. 우리말샘

주2

조선 시대의 문신ㆍ한학자(1564~1635).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ㆍ보만당(保晩堂)ㆍ치암(癡菴)ㆍ추애(秋崖)ㆍ습정(習靜). 벼슬은 우의정, 좌의정에 이르렀다. 한문학의 대가로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조선 중기의 4대 문장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서에 ≪월사집≫, ≪서연강의(書筵講義)≫, ≪대학강의(大學講義)≫가 있다. 우리말샘

주3

보내는 쪽에서 예를 차려 작별할 때에 서운한 마음을 읊은 시. 우리말샘

주4

기록한 문서. 우리말샘

주5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다. 우리말샘

주6

필요 없는 글자나 글귀를 지워 버림. 우리말샘

주7

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우리말샘

주8

문장이나 시가를 비평하고 주석함. 우리말샘

주9

같은 종류의 여러 책을 비교하여 차이 나는 것들을 바로잡음. 우리말샘

주10

이름난 선비. 또는 유명한 유학자. 우리말샘

주11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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