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는 짚으로 꼬아 만든 줄이다. 농경을 주로 하는 촌락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발달했다. 원삼국 훨씬 이전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되었다. 굵기에 따라 가는 새끼·중간 새끼·굵은 새끼·동바·밧줄 등으로 나뉜다. 용도도 매우 다양하여 작게는 짚신의 새끼날에서부터 가마니 포장용, 지붕의 이엉새끼, 지게의 동바, 그 밖의 쇠고삐 등에 널리 쓰였다. 처음에는 손으로 꼬다가 20세기 초 새끼틀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1970년대에 들어 각종 비닐끈이 쏟아져 나오면서, 생활권에서 밀려나고 있다.
초삭(草索) · 고삭(藁索)이라고도 한다. 새끼의 역사는 농경을 주로 하는 촌락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발달한 것으로, 현대적인 합성수지의 밧줄이나 노끈 등이 나오기 전까지는 중요한 농공용의 소모재인 동시에 대표적인 포장재료였다.
새끼의 흔적과 형태가 나타난 것은 삿무늬토기로, 우리나라에서는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부터의 회색경질토기에서 주로 보인다. 토기를 두드리는 두들개(방망이)에 새겨진 무늬나 혹은 두들개에 감은 삿자리(새끼) 등에 의해 부차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또, 신라 토기인 짚신형토기에도 새끼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새끼는 원삼국 훨씬 이전에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중 및 관아에서 쓰는 물품을 납품한 공인(貢人)들의 조직인 공계(貢契) 중 삭계(索契)는 새끼나 줄 등을 정부에 조달하던 공인들의 조직이다. 대동법 시행 이후 새끼 역시 대동미로 조달되었으며, 『만기요람』 선공감(繕工監) 조에 기재된 삭미(索米) · 삭계미(索契米) 등은 이와 관련된 용어이다.
또 『만기요람』 세폐(歲幣)의 작태식(作駄式)에, 각 종을 125바리[駄]로 만들어서 안팎을 묶고 싸는 것으로 전에는 새끼[藁索]를 사용하기로 정하였는데, 1767년(영조 43) 세 겹으로 꼰 굵은 새끼를 사용할 일로 묘당(廟堂: 의정부 또는 비변사)에서 재결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새끼 종류는 다양하여 가는 새끼 · 중간 새끼 · 굵은 새끼 · 동바 · 밧줄 등 굵기에 따른 구별이 있으며, 용도도 매우 다양하여 작게는 짚신의 새끼날에서부터 가마니 포장용, 지붕의 이엉새끼, 지게의 동바, 그 밖의 쇠고삐 등에 널리 쓰이고 있었다.
옛날 농가의 행랑방이나 헛청에서는 농한기나 비오는 날에는 새끼 꼬는 일이 중요한 일과였다. 20세기 초 새끼틀이 들어오면서 새끼를 대량생산하게 되었고,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군용으로 많은 새끼가 가마니와 함께 공출되기도 하였다.
새끼는 두 가닥의 볏짚을 양손바닥으로 비벼서 꼬는 것으로, 오른손을 바깥쪽으로, 왼손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면, 오른새끼가 되고, 반대로 꼬면 왼새끼가 된다. 보통 오른새끼가 일반적이지만, 금줄일 경우는 반드시 왼새끼라야 된다. 금줄은 신성한 제장이나 기타 잡인의 출입을 삼가는 장소 또는 아기 낳은 때도 치게 된다. 이 왼새끼는 악귀를 쫓는 기능을 지녔다고 한다.
새끼틀은 새끼의 굵기에 따라 가는 새끼 · 보통 새끼 · 굵은 새끼용이 있고, 또 원료인 볏짚의 공급법에 따라 삽입형 · 투입형 · 자동공급형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작용은 거의 비슷하다.
동력을 이용한 새끼틀 중 가장 간단한 형태는 족답(足踏) 장치 대신 주축에 벨트풀리를 붙인 것이다.
전자동 새끼틀은 투입형과 삽입형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투입형은 기체를 될 수 있는 대로 낮게 하고, 볏짚의 공급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동력 전달기구에도 무단변속기(無段變速機) 등을 붙여 동력의 접속과 절단, 그리고 운전중의 변속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새끼는 손으로 꼬다가 기계를 활용한 대량생산을 하여, 1960년대 후반까지 긴요하게 쓰이다가 1970년대에 들어와 각종 비닐끈이 쏟아져 나오면서, 새끼는 거의 생활권에서 밀려나고 있는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