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봉(璽封, 1687~1767)은 1687년 전라도 순천에서 태어났고, 속성은 손씨(孫氏)이다. 법명은 새봉(璽篈), 법호는 상월(霜月), 자는 혼원(混遠)이다. 설암 추붕(雪巖秋鵬)으로부터 편양파(鞭羊派)의 법맥을 이었고, 해남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의 제9대 종사로 추숭(追崇)되었다.
새봉은 11세에 조계산 선암사(仙巖寺)의 극준(極俊)에게 출가했고, 16세 때 소요파(逍遙派) 화악 문신(華岳文信, 1629∼1707)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18세 때 편양파 월저 도안(月渚道安)의 제자 설암 추붕(雪巖秋鵬, 1651∼1706)에게 배우고 의발을 전수하였다. 환성 지안(喚醒志安), 남악 태우(南嶽泰宇) 등 당대의 종장들에게 수학했고, 1713년(숙종 39) 순천 선암사(仙巖寺)에서 개당하여 강학에 힘썼다. 1748년(영조 24)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 1750년에 주표충원장(主表忠院長) 겸 국일도대선사(國一都大禪師)가 되었다.
새봉이 강의했던 1754년 3월 16일부터 4월 3일까지 선암사에서 열린 화엄대회(華嚴大會)에는 1,287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참여한 회중(會衆)의 명단이 『해주록(海珠錄)』 1권에 나오는데, 새봉의 제자 용담 조관(龍潭慥冠)을 비롯한 참가자의 명단이 모두 기재되어 있다. 새봉은 1767년 10월 81세의 나이에, “물은 흘러서 다시 바다로 가고 달은 떨어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水流元去海 月落不離天).”라는 임종계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제자 탁선(卓璿)이 그의 유골을 수습하여 초제(醮祭)를 지내기 위해 묘향산에 갔다가 3과의 사리를 얻어 오도산(悟道山), 선암사, 대둔사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새봉은 ‘강의로 진정한 이해를 밝히고 마음으로 지혜를 깨달아 실천함’을 법문으로 삼고, 계율을 엄정히 지켜, 부휴계(浮休系)의 무용 수연(無用秀演, 1651-1719)으로부터 환성 지안 이후 제1인자라는 평가를 들었다. 일상의 수행으로 참선 외에도 매일 1불(佛) 5보살의 명호를 5,000번씩, 염불을 1,000번씩 염주로 수를 세며 외웠다고 한다.
또한 "유가의 아직 드러나지 않은 기상(氣像)은 불가의 있는 그대로의 이(理)이고, 유가의 태극(太極)은 불가의 일물(一物)이며, 유가의 이일분수(理一分殊)는 불가의 일심만법(一心萬法)이다."라고 하여 유교와 불교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반관즉견성(返觀卽見性)’을 내세워 마음의 본원으로 되돌리는 반관(返觀)의 공부가 없으면 자기 심성에 무익하므로 반드시 자신의 마음으로 불심(佛心)을 증득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가 쓴 시를 모은 『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은 1780년(정조 4)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본래 두 권 분량의 시가 있었지만, 상당수가 분실되어 한 권으로 엮어 펴냈다고 한다.
새봉의 비는 선암사와 대둔사에 건립되었는데, 대둔사 비의 비문은 1782년 당시 남인의 영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