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2m. 선림원터의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각 부재를 수습하여 1965년 11월에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원래의 자리는 선림원터에서 뒤쪽 산기슭으로 약 50m 정도 올라간 곳이라고 전한다.
승탑은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을 두고, 그 위에 몸돌과 지붕돌, 상륜부 등을 차례로 올려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바닥돌과 받침돌만 남아 있다. 받침돌의 모습으로 보아,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圓堂形)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네모난 바닥돌은 8각의 아래받침돌 아랫단과 같은 돌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 올린 아래받침돌의 윗단은 다른 돌로 만들었다. 가운데받침돌과 윗받침돌 역시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바닥돌은 땅 위에 드러난 부분만 다듬었고, 그 아래부분은 자연석의 거친 상태 그대로이다. 평평하게 잘 다듬은 바닥돌의 윗면에는 단면 8각의 아래받침돌 아랫단이 자리하고 있는데, 옆면의 아래부분에는 각지고 낮은 굄이 새겨져 있고, 윗부분에는 덮개돌 모양이 두툼하게 조성되었다. 아랫단의 옆면에는 각 면마다 각각 1구의 안상(眼象)이 장식되었는데, 아랫단의 높이가 낮아서 길고 가늘게 보이며, 안상 안에는 1면 걸러서 1면씩 모두 4면에 한 쌍의 사자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사자상의 모습은 모두 달라서, 아래받침돌의 장식으로는 가장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아래받침돌의 윗단은 단면이 둥근데, 모든 면에 연꽃 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곧 연꽃 무늬는 2장의 꽃잎[複葉]이 아래로 향해 있는 복련(覆蓮)으로, 반전(反轉)한 연꽃의 꽃잎 끝부분을 아래받침돌 아랫단의 8각 모서리에 맞추어 배치하고서 돋을새김하였는데, 연꽃잎의 크기는 넓은 편이다. 연꽃 무늬 위에는 8각의 굄대를 두었는데, 낮고 각진굄과 높고 둥근 굄 위로 반전과 덮개돌 모양으로 이루어진 높직한 또 하나의 굄을 새겨, 마치 또 다른 굄돌을 만들어 끼운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가운데받침돌은 간주(竿柱) 모양으로 이루어진 높직한 둥근 기둥인데, 겉면에는 구름 속을 날고 있는 용이 웅건(雄健)하게 장식되었다. 곧 둥근 용의 머리는 거의 튀어나올 정도로 깊이 돋을새김되었고, 부리부리한 눈, 큼직한 입과 코, 미끈하면서 아름다운 가는 머리카락, 윗입술에 붙어 위로 길게 올려 내민 혓바닥 등은 마치 용이 살아 움직이는 듯이 표현되었다. 몸통 전체를 싸고 있는 비늘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고, 용의 주변에 굵게 조각한 권운(卷雲) 무늬도 빈틈없이 장식되었다. 이 조각은 살아서 승천하는 용의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구름 속을 나는 용의 모습은 모두 3군데에 자리하고 있는데, 한 쌍은 구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고, 뒤쪽에 있는 용은 앞쪽의 용을 따라서 방향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윗받침돌은 가운데받침돌 윗부분에 붙여서 조성하였는데, 아래받침돌의 윗단처럼 단면은 둥글다. 옆면은 2장의 꽃잎이 위로 솟아 있는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로 장식되었는데, 그 모습은 아래받침돌 윗단의 연꽃 무늬와 비슷하지만, 꽃잎 끝부분의 반전이 각 모서리 사이에 맞추어져 다소 다르다.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는 낮고 높직한 굄이 마련되어 있다. 곧 윗면의 가장자리를 따라 둥글게 새긴 낮고 각진 2단의 굄이 있고, 가운데부분에는 8각의 낮은 굄 위에 반전된 덮개돌 모양의 높직한 8각의 굄이 있으며, 다시 그 위에는 또 다른 낮고 각진 1단의 굄을 새겨 놓았다.
이 승탑은 가운데받침돌에 구름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용을 처음으로 조각하여, 화사한 장식 의장(意匠)으로 삼았다. 절터에 자리하고 있는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보물, 1966년 지정)와의 관계로 보아, 건립 시기는 886년(정강왕 1)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