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면 3칸, 옆면 1칸의 단층건물로 맞배지붕을 올렸다. 국망봉(國望峯) 중턱에 위치한 성혈사는 원래 작은 암자였는데, 좁은 계곡의 일부를 다진 뒤 승방(僧房)과 나한전을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하여 사역(寺域)을 넓혔다. 나한전은 1984년 보수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553년(명종 8)에 처음 지어졌고, 1634년(인조 12)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은 기둥 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栱包)를 올린 다포(多包)계 건물이다. 건물의 앞면과 뒷면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空間包)가 칸 마다 각각 1구(具)씩 배치되었는데, 안팎 모두 2출목(出目)으로 구성되었다. 건물 바깥쪽의 주두(柱頭) 위에 올려진 살미첨차[山彌檐遮]는 모두 쇠서[牛舌]의 모습이며, 건물 안쪽의 첨차는 둥근 교두형(翹頭形)의 모습이어서 조선 전기의 특징이 다소 남아 있다.
건물 앞면의 창호는 조형이 뛰어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가운데 칸의 문에는 십장생(十長生)이 섬세하게 뚫새김[透刻]되었는데, 주로 불·물·하늘에서 사는 생물인 게·물고기·개구리·학·용·동자상(童子像)·연꽃 등이다. 이러한 장식은 조선 중기 이후에 불교가 점차 서민의 의식을 포용하면서, 사찰 건물에 민화적 요소를 강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