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퇴재(退齋)·퇴휴당(退休堂). 중군사정(中軍司正) 소희(蘇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소효식(蘇效軾)이고,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소자파(蘇自坡)이다. 어머니는 개성왕씨(開城王氏)로 왕석주(王碩珠)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 진사시에 이어 1509년(중종 4)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정언을 거쳐 수찬에 재직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복위를 건의, 현릉(顯陵)에 이장하게 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고, 직제학을 거쳐 사성이 되었다. 1521년 영접사(迎接使) 이행(李荇)의 종사관으로 명나라 사신을 맞았고, 그 뒤 왕자사부(王子師傅) 등을 지냈다.
이어 전라도관찰사로 나갔으나, 1530년 왜구에 대한 방비를 소홀히 했다 하여 파직되었다.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형조판서 등을 거쳐 1533년 지중추부사에 올라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37년 형조·호조·병조·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다.
이듬해 성주사고(星州史庫)가 불타자 왕명에 따라 춘추관(春秋館)의 실록을 등사, 봉안하였다. 1545년(인종 1) 윤임(尹任) 일파의 탄핵으로 사직하였다. 이 해 명종이 즉위한 뒤 을사사화로 윤임 등이 몰락하자 재기용되어 좌찬성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익산에 은퇴하였다.
문명이 높고 율시(律詩)에 뛰어났으며, 글씨는 송설체(松雪體)를 잘 썼다. 익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저서로는 『양곡집(陽谷集)』이 있으며, 글씨는 양주에 「임참찬권비(任參贊權碑)」와 「소세량부인묘갈(蘇世良夫人墓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