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부인 ()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순정공의 부인.
인물/전통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내용 요약

수로부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순정공(純貞公)의 부인이다. 신라의 향가인 「헌화가(獻花歌)」와 「해가(海歌)」의 주인공이다. 수로부인은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할 때 동행하였는데, 바닷가를 지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바위 위에 핀 철쭉꽃을 꺾어 와 「헌화가」를 지어 부르며 바쳤다. 이후 바다의 용이 부인을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니, 백성들이 모여 「해가」를 지어 불러 수로부인을 구하였다고 한다.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순정공의 부인.
인적 사항

수로부인은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 대 순정공의 부인이다. 수로부인의 남편인 순정공은 상재(上宰)를 역임한 김순정(金順貞)으로 보이는데, 주1계의 직계였기 때문에 지역적 중요성을 띄던 강릉의 태수가 되었다. 순정공과 수로부인은 성덕왕의 측근이자 당대 유력한 인물로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의 왕비 삼모부인(三毛夫人)은 김순정과 수로부인의 소실일 가능성이 높다.

향가 작품 속 수로부인

수로부인은 신라의 향가인 「 헌화가(獻花歌)」와 「 해가(海歌)」의 주인공이다. 수로부인이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할 때 동행하였는데, 바닷가를 지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바위 위에 핀 철쭉꽃을 꺾어 와 「헌화가」를 지어 부르며 바쳤다. 그 일이 있은 이틀 후 바다의 용이 부인을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니, 순정공이 손쓸 틈도 없었다.

이에 한 노인이 경내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 부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말에 따라 백성들이 모여 「해가」를 지어 부르니 용이 수로부인을 모시고 나왔다. 이렇듯 수로부인은 용모가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주2에게 붙들려갔다고 한다.

작품 해석

순정공이 강릉으로 가는 도중 주3을 베풀었다거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등의 행위는 기우제(祈雨祭) 혹은 바다에 망제(望祭))와 같은 제사를 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수로부인은 사제적(司祭的)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는 『삼국유사』 성덕왕조에 당시 가뭄이 극심하였다는 내용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해가」는 주4수로왕(首露王)과 관련된 향가인 「 구지가(龜旨歌)」와 같은 패턴을 보인다. 주술적 행위를 통해 민심을 수습하고자 한 의도가 담겼다는 시각에서는 「해가」와 「구지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반면에 「구지가」가 사전에 준비된 행위를 재현하였다면, 「해가」는 용과 같은 주5에 굴복하지 않는 차이가 있다. 즉, 「해가」는 동해안 지역의 제의권을 장악하고자 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유사(三國遺事)』

단행본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논문

윤재운, 「신라 성덕왕 · 효성왕대의 정치와 사회-『三國遺事』 聖德王 · 水路夫人 · 孝成王條를 중심으로」(『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39,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18)
이주희, 「水路夫人의 신분」(『영남학』 24,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3)
주석
주1

신라의 제29대 왕(602~661). 성은 김(金). 이름은 춘추(春秋). 묘호는 태종(太宗). 율령을 정비하고,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재위 기간은 654~661년이다.    우리말샘

주2

신령스럽고 기묘한 물건.    우리말샘

주3

점심으로 차려 먹는 음식.

주4

신라 유리왕 19년(42)에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 12부족의 연맹체를 통합하여 김수로왕의 형제들이 세운 여섯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 금관가야를 맹주로 하여 여섯 개가 있었는데, 562년에 대가야를 마지막으로 신라에 병합되었다.    우리말샘

주5

신으로서의 자격이나 격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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