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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삼인대(淳昌三印臺)

    건축문화재 | 유적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강천사(剛泉寺)에 있는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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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순창삼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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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강천사(剛泉寺)에 있는 유적지.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 1506년(연산군 12) 중종반정 이후 폐위된 왕비 신씨(愼氏)의 복위를 위하여 세 사람이 관인(官印)을 걸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한 곳이다.
    이곳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碑閣)이 있는데, 비각 안에는 높이 157㎝, 폭 80㎝, 두께 23㎝의 삼인대비(三印臺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1744년(영조 20) 4월에 세운 것이다. 도암(陶庵)이재(李縡)가 비문을 짓고, 정암(貞庵)민우수(閔遇洙)가 비문의 글씨를 썼으며, 지수재(知守齋)유척기(兪拓基)가 전서(篆書)를 썼다. 연산군의 학정이 극에 이르자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이 주동이 되어 연산군을 폐출하고 성종의 둘째 왕자이던 진성대군을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게 한 중종반정이 있었다.
    이 때 반정공신(反正功臣)들은 중종의 비 신씨를 왕비에서 폐위시킬 것을 강요하였다. 이에 중종은 신씨를 폐출하고 장경왕후(章敬王后)를 맞이하였으나, 1515년(중종 10)에 왕비는 별세하였다.
    이에 당시 담양부사 박상(朴祥), 순창군수 김정(金淨), 무안현감 유옥(柳沃)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이곳 강천사 계곡에 모여 폐위된 신씨를 왕비로 복위시키자는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이들이 소나무 가지에 관인을 걸어 놓고 맹세한 곳이 여기라 하여 삼인대라 부르게 되었으며 삼인대비를 세운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홍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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