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산(靈山). 신균(辛均)이라고도 한다. 자는 경화(敬和). 아버지는 신중선(辛中善)이다.
1418년(태종 18) 문음으로 동부녹사(東部錄事)에 임명된 뒤 지안성군사(知安城郡事)·순흥도호부사 등의 외직을 거쳐, 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예빈시윤(禮賓寺尹)·판제용감사(判濟用監事)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노인직으로 검교한성부윤(檢校漢城府尹)·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검교호조참판(檢校戶曹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1470년에 세조 및 성종을 보호하면서 길렀던 명빈(明嬪)의 청으로 지중추부사가 되었으나 곧 대간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뒤에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사가(史家)에 따르면 신균이 특별한 재능이 없이 중앙과 지방의 좋은 관직을 역임할 수 있었던 것은 호부(豪富: 세력이 있는 큰 부자)에 힘입은 바가 많았다고 한다. 시호는 호이(胡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