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불고(不孤), 호는 순은(醇隱).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성용(成用)의 4대손으로 벼슬은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냈다.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 등과 친교가 있었고 고려가 망한 뒤에는 광주(光州)에서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해서·초서·예서에 모두 능하여 당대에 이름이 높았으며, 특히 예서의 한 종류인 팔분체(八分體)로 많은 글을 썼다고 한다.
그의 필체는 독특하여 당시 사람들이 덕린체(德隣體)라고 불렀다. 그의 그림으로는 구덕수궁미술관 소장인 「산수도(山水圖)」가 있으나 양식면으로 볼 때 조선 후기의 남종화(南宗畫)와 유사점이 많이 보이는 작품이므로 그 진위여부를 알기 힘들다.
그의 서체의 모간(模刊)은 『고금법첩(古今法帖)』에 전한다. 두문동 72현의 한사람으로 고령의 영연서원(靈淵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