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양세진(楊世振). 평안남도 평양 출신.
1910년 국권이 강탈되자 1914년 만주로 망명하여 동지 규합에 힘쓰다가 일단 귀국하였다.
1918년 다시 만주 유하현(柳河縣)으로 망명,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군사훈련을 받은 뒤 제2대대장에 임명되었고, 실전경험을 쌓기 위해 러시아 백군(白軍)에 참가하여 하얼빈에서 활동하였다.
그 뒤 화전현(華甸縣)에서 잠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20년 8월 독립단이 광복군사령부로 개편되자 이에 가입하여 제6대장이 되었다. 광복군사령부의 지시로 국내에 잠입하여 벽창의용대(碧昌義勇隊)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어 평안도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독립단원 모집, 일본경찰·친일파·밀정 살해 등의 활약을 하였다.
즉, 의주에서 친일파인 보민회장(保民會長) 오모(吳某)를 사살하고 평안남도 대동군 전촌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경찰 3명을 사살하고 방화하였다. 그뒤 서북지방 각지를 왕래하면서 밀정과 일본경찰을 살해하니 관서일대가 소연하였다.
1924년 한동진(韓東振)과 함께 장춘(長春)으로 갔다가 일본영사관경찰에 잡혀 1925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평양복심법원에서도 사형을 언도받자, 변호사 한근조(韓根祖)의 권고로 상고하였다가 “구차히 살고 싶지 않다.” 하고 상고를 취하하여 1926년 평양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