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봉성(峰城). 아버지는 예부상서(禮部尙書) 염신약(廉信若)이며, 부인은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郎) 김황백(金黃白)의 딸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길에 올라 명종(明宗) 때에 삼척과 송림(松林: 지금의 경기도 장단)의 현위(縣尉), 성불도감판관(成佛都監判官)·장생령(掌牲令)·예빈주부(禮賓注簿)·합문지후(閤門祗候) 등을 지내고 1198년(신종 1)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 1205년 (희종 1) 예빈소경(禮賓少卿)으로 나주에 출보(出補: 중앙관직에 있던 관리가 지방관직에 임명되어 나아감)하였다가 파직되었다.
그 뒤 좌사낭중(左司郎中)으로 다시 발탁되고 태부시(太府寺)와 위위시(衛尉寺)의 소경(少卿)을 거쳐 고종(高宗) 때 공부(工部)와 호부(戶部)의 시랑(侍郞)을 지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1217년(고종 4)에 작성된 염극모의 묘지석(墓誌石)이 수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