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는 미상이나, 고려 신돈(辛旽)의 어머니가 이 절의 여종이었다고 한다. 신돈이 죽자 이 절은 폐쇄되었으며, 뒤에 다시 고쳐 지으려다가 완성하기도 전에 다시 신돈의 일로 반대가 생겼기 때문에 헐어버렸다. 그 뒤 이기담(李基聃)가 창녕을 다스린 지 1년 만에 관리들과 백성들이 옥천사가 철거된 것을 애석히 여기므로 새 당우를 객사의 동쪽에 건립하였다 하나, 현재 절터는 묘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일대에 석축과 석탑부재 등이 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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