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대백(大伯), 호는 속천(涑川). 아버지는 정묘호란 때 의병장인 우형(禹悙)이며,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사과(司果) 최응회(崔應會)의 딸이다. 정온(鄭蘊)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6년(광해군 8)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아전들의 비행을 보고 수차에 걸쳐 수령에게 시정할 것을 촉구하였다. 1623년(인조 1) 동당시(東堂試)에서 장원하였다.
1634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양전소(量田疏)」·「십이조소(十二條疏)」·「구언진폐소(求言陳弊疏)」·「만언소(萬言疏)」 등 여러 차례 국정 전반에 걸쳐 상소를 하여 국가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제시하였으며, 또한 관리들의 부패 척결, 재해의 구제, 형벌의 불공평 등에 대하여 시정을 촉구하였다.
1644년 하동(河東)의 수령이 되어서는 자신의 봉록을 털어 교생들을 교육하고, 기계와 선박을 수선하여 재난에 대비하는 한편, 수시로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국경지대의 경비를 강화하였다.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주역(周易)』과 『홍범(洪範)』을 깊이 연구하여 『홍범우익(洪範羽翼)』 20편, 『홍범연의(洪範衍義)』 8편, 『홍범기범(洪範箕範)』 2편 등을 지어 왕에게 올렸다. 1635년 병조정랑에 제수되고 이어서 사헌부지평과 공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속천문집(涑川文集)』 7권, 『사서석의(四書釋義)』·『홍범우익(洪範羽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