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성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 충주유씨 출신으로 광종 묘정에 배향된 공신.
이칭
시호
광위(匡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충주(忠州)
주요 관직
고려 태부(太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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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유신성은 고려 전기 충주유씨(忠州劉氏) 출신으로, 광종 묘정(廟廷)에 배향된 공신이다. 그는 성종 대 배향되었는데, 덕종 때에는 태부(太傅)에 추증되었다. 또한, 충주 정토사(淨土寺) 법경대사(法鏡大師)의 세속 제자이다. 충추유씨는 충주의 유력한 지역 세력으로 왕태후를 배출하였으며, 정종과 광종의 외가이다.

정의
고려 전기 충주유씨 출신으로 광종 묘정에 배향된 공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유신성(劉新城)의 가계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충주유씨 출신으로 추정된다.

주요 활동

충주는 중요한 내륙의 요지이며, 이로 인해 태조 왕건은 이 지역의 유력자 유긍달(劉兢達)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후 왕후 유씨는 정종광종 등을 낳았다. 유신성이 994년(성종 13) 광종 묘정에 배향된 것은 이러한 가문의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신성은 충주에 있는 정토사(淨土寺) 법경대사(法鏡大師)의 음기(陰記)에 등장하는 세속 제자이다. 법경대사는 성주산문(聖住山門)의 선풍을 계승한 선종 승려이며, 충주 지역 세력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태조 왕건은 법경대사를 국사로 임명하였다. 유신성은 이 음기에 아찬(阿飡)이라고 나온다.

상훈과 추모

994년(성종 13) 서필(徐弼)과 함께 광종의 묘정에 공신으로 배향되었다. 이후 1027년(현종 18) 현종이 태묘를 배알한 후에 광종묘에 배향했는데, 이 배향은 성종 대와 달리 현종 대 거란 침입으로 복구가 된 태묘를 뜻한다. 이후 1033년(덕종 2) 공신에게 증직(贈職)을 하면서 태부(太傅)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광위(匡衛)이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정토사 법경대사 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

단행본

한국역사연구회 편, 『역주 나말여초금석문』 상·하(혜안, 1996)

논문

김혜완, 「나말려초 남한강 주변의 선종사원과 선사들의 활동- 정치세력과의 관계를 중심으로」(『한국고대사연구』 49, 한국고대사학회, 2008)
윤경진, 「고려초기 재지관반의 정치적 위상과 지방사회 운영」(『한국사연구』 116, 한국사연구회, 2002)
김수태, 「고려초 충주지방의 호족: 충주유씨를 중심으로」(『충청문화연구』 1, 1989)
채상식, 「정토사지 법경대사비 음기의 분석- 고려초 지방사회와 선문의 구조와 관련하여」(『한국사연구』 36, 한국사연구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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