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징보(澄甫), 호는 도계(道溪). 유영경(柳永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열(柳悅)이다. 아버지는 전창위(全昌尉) 유정량(柳廷亮)이며, 어머니는 선조의 딸 정휘옹주(貞徽翁主)이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로 가산이 적몰되고 유배당한 아버지를 따라 호남에 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왔다. 1627년(인조 5)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음보(蔭補)로 참봉이 되고, 시직(侍直)으로 163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1638년 동지겸성절사(冬至兼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1651년(효종 2) 경상도관찰사로 나아갔으며, 1656년에도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년) 예조참판으로 고부 겸 주청사(告訃兼奏請使)의 부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온 뒤 강화유수가 되었으며, 1662년에는 도승지를 역임하였다.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