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충주(忠州)이며, 대원현(大原縣) 출신이다. 척족(戚族)가문에서 태어나 광종 때 벼슬길에 나와 내승지(內承旨)가 되었다.
목종 때 이부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가 되고, 현종이 즉위한 뒤 3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올랐으며, 1011년(현종 2) 3월에는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郎平章事), 이듬해 2월에는 문하시랑을 지냈고, 1014년 4월 검교태사 수문하시중(檢校太師守門下侍中)에 이르렀다.
1018년 백성들에게 전염병이 유행하고 절후가 어긋나는 것은 형정(刑政)의 시기가 맞지 않기 때문이므로 월령(月令)에 따를 것을 청하였으며, 여러 왕에 걸쳐 항상 근직(近職)에서 왕을 보필하였다. 1019년(현종 10) 8월 세상을 떠난 후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