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백규(伯圭), 호는 추담(楸潭)·운계(雲溪). 유필의(兪必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정(兪淨)이다. 아버지는 서윤 유여해(兪汝諧)이며, 어머니는 최건(崔湕)의 딸이다.
1635년(인조 13) 생원이 되고,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1653년 세자시강원설서를 거쳐 이듬해에 지평(持平)이 되었다. 1655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오고, 동부승지·충청도관찰사에 이어 1662년(현종 3) 우부승지에 임명되었다.
다음해 좌승지를 지내고 광주목사(廣州牧使)로 나갔다. 1666년 승지를 거쳐 수원부사에 재임중 진상물을 병조판서 홍중보(洪重普)에게 임의로 주었다가 발각되어 파직, 철원의 풍전역에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병조참판이 되고, 1674년 고부사(告訃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 때 서장관(書狀官)이었던 권해(權瑎)와 사감(私憾)으로 불화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다시 등용되어 1679년 승지가 되었다.
한편, 예조참의로 있을 때에 허견(許堅)의 옥사가 있자, 허견의 부친을 역적으로 다스릴 것을 요청하는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689년(숙종 15)에 개성부유수가 되었다. 저서로는 『추담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