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방숙(方叔), 호는 취옹(醉翁). 유영(兪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대의(兪大儀)이다. 아버지는 예조참의 유성증(兪省曾)이며, 어머니는 구준(具濬)의 딸이다.
1627년(인조 5) 생원이 되고, 163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을 거쳐 사간으로 재직중 “명나라를 피하고 청나라에 사대(事大)의 예를 닦는 것이 마땅하다.”고 건의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 죽음을 당한 오달제(吳達濟)·윤집(尹集)·홍익한(洪翼漢) 등 삼학사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요청하였고, 또 북방과 관련한 7개 조항을 제출하여 채택되었다.
1652년(효종 3)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655년 대사간으로 있을 때에 어전에서 승지 유도삼(柳道三)이 인평대군(麟坪大君)에게 신(臣)이라 칭한 것은 아무 뜻 없는 망발이나, 사사로이 대군을 만나는 것은 국법에 어긋난다 하여 파직을 청하였다가 효종의 노여움을 사서 진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러나 윤집(尹鏶)·권시(權諰) 등 여러 대신들의 힘으로 한달 만에 방환(放還)되었다. 현종초에 다시 복관되어 대사헌을 거쳐 예조참판을 지내고 죽었다. 저서로는 『취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