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 출신.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일제에 의하여 한국군대가 강제해산되자 양주에서 의진을 형성하여 양주·파주·적성·포천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말경 13도연합의진을 형성하여 이인영(李麟榮)을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서울진공작전을 폈으나 동대문밖 30리 지점에서 좌절되었다.
그뒤 허위(許蔿)를 대장으로 하여 임진강일대에서 잔류 의병들을 규합하여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6월 허위가 잡힌 뒤 30∼40명의 소규모 의병을 인솔하고 파주·적성·양주 등지를 다니면서 일본군과 유격전을 전개하면서, 일제의 앞잡이였던 일진회원 박순옥(朴舜玉)·이봉계(李鳳季) 등을 처단하였다.
1909년 이은찬(李殷瓚)·정용대(鄭用大)·강기동(姜基東)·연기우(延基羽) 등과 연합부대를 형성하여 양주·파주·포천·영평·연천·삭녕·김천·배천·연안·장단을 연결하는 육상과 해상 도서지방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이렇게 항전을 계속하다가 1909년 3월 17일 양주 북방 40리 지점에서 삭녕수비대와 전투중 부하 16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