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중립(仲立), 호는 청곡(靑谷). 아버지는 영흥군(鈴興君) 윤지효(尹之孝)이다.
어릴 때부터 문장에 능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야인으로서, 용맹스럽게 선조의 수레를 호위하여 피난길을 도왔다. 이에 선조가 가상하게 여겨 특별히 개성에 있는 정종의 능인 후릉(厚陵)의 참봉을 제수하였다. 1601년 곽산군수가 되고 1604년 영원군수를 지냈다.
뒤에 윤찬의 재주를 아낀 조정대신들의 천거로 선전관에 제수되었다.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이르렀다. 왕을 호가한 공으로 원종공신에 녹훈되고 벼슬하는 동안의 공적으로 파릉군(坡陵君)에 봉해졌다. 55세로 일생을 마쳤다.